오늘 엄마와 다툰 아이에게 – 《엄마가 유령이 되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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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하고 집에 오니 공기가 차갑다. 아내와 딸 사이에 묘한 기류가 흐른다.

유치원 하원 후 도서관 영어 수업에 안 간다고 했거나.
몇 숟가락 뜨지 않고 밥을 그만 먹겠다고 했거나.
약속한 시간 보다 TV를 더 보겠다고 떼를 썼거나.

엄마와 다툰 딸

그중 한 가지일 것 같은데, 냉랭한 모녀 사이에서 진위 파악은 뒤로 미뤄둔다. 이런 경우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다.

시간이 필요하다.
그 시간이 길지 않도록 도움을 주는 그림책이 한 권이 있다. 노부미(Nobugi ,のぶみ) 작가의 《엄마가 유령이 되었어!》가 바로 그 책이다.


《엄마가 유령이 되었어!》 줄거리

‘엄마가 자동차에 부딪혀서 유령이 되었습니다.’

책은 아주 충격적인 한 줄로 시작한다. 귀여운 그림과는 대조적인 시작에 아이도 책에 집중한다.

교통사고로 유령이 된 엄마는 남겨진 5살 건이에 대한 걱정이 크다. 그래서 하늘나라로 가지 못하고 건이와 할머니 곁을 맴돈다.

밤 12시가 되자, 건이는 떠나지 못한 엄마 유령과 만난다. 두 모자는 그리움에 서로를 부둥켜안고 운다.

그러면서 건이는 미처 엄마에게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건넨다.

《엄마가 유령이 되었어!》 삽화1

“엄마한테 거짓말을 백 번쯤 했는데 미안하다고 말 못 했어.”

“맞다. 엄마 몰래 엄마가 잘 때 입안에 코딱지 넣었는데.”

“엄마가 몇 살인지 까먹어서 친구들한테 예순다섯이라고 말했어.”

이 대목을 읽으며 아이와 나는 크게 웃었다.

슬픈 내용과 달리 작가는 일부러 웃을 수 있는 장치를 넣어두었다. 5살 아이라면 그럴 수 있을 것 같은 공감에 웃음이 났다. (억지스럽지 않고 자연스러워 좋았다.)

《엄마가 유령이 되었어!》 삽화2

“건아, 엄마는 이제 너랑 같이 있을 수 없어. 혼자서 목욕하기 할 수 있지? 함께 잘 수도 없으니까 쉬 하러 혼자 가야 해. 장난감 정리도 스스로 해야 되고. 엄마는 유치원에 널 데리러 갈 수도 없어.”

엄마 유령은 건이와의 우연한 만남에서 자신의 부재로 비롯되는 걱정을 당부로 대신한다. 5살 건이는 헤어짐을 인정할 수 없다. 짧은 만남의 끝에서 겨우 받아들이기로 한다.

“기차를 좋아하는 건이가 좋아.”

“친구들한테 친절한 건이가 좋아.”

“블록을 잘 만드는 건이가 좋아.”

“어리광을 피우는 건이가 좋아.”

“셀 수도 없을 만큼 건이가 좋아서 엄마는 가슴이 벅차.”

“건아, 고마워. 건이의 엄마라서, 엄마는 행복했어.”

《엄마가 유령이 되었어!》 삽화3

여기까지 읽던 나와 별가루는 결국 눈시울이 붉어졌다.

6살 딸은 슬픈 감정을 털어내려고 억지웃음을 지었다. 나도 아이의 웃음에 맞춰 웃었지만, 빨간 눈을 하고 있었다.

별가루는 ‘아빠, 웃기기도 한데 슬프다.’고 담백하면서 진솔한 감정을 들려주었다.

나는 아이의 말에 ‘아빠도 그러네. 근데 다 읽고 나니 별가루 생각에 마음이 가득 찬다.’라고 말했다.

별가루는 ‘나도.’라고 답한다.

다행히도 책은 건이의 엄마가 매일 밤 12시가 되면 건이 앞에 나타난다는 내용으로 결말이 난다. 어린 독자들을 생각하면 그나마 위안이 되는 엔딩이다.

굳이 이 슬픈 책을 아이에게 읽어줘야 할까?!

책은 뜻밖의 유머로 실제 읽은 이에게 웃음을 준다. 평소 생각하는 유령과는 달리 귀엽고도 따뜻한 이미지로 묘사한 특징도 눈에 띈다. (어른의 입장에서는 그 역설됨이 더 아프게 와 닿았다.)

그러나 어떻게 묘사했던 ‘엄마의 죽음’은 아이에게 온 세상의 부재와도 같아서 어린 독자에게 큰 충격을 준다.

우리 딸아이는 어떠했을까?

책장이 넘어감에 아이의 눈은 붉어졌다. 나의 눈도 토끼 눈이 되었다. 마지막 책장까지 넘기자, 아이는 나를 꼭 안았다.

엄마와 다툰 아이는 그날 그렇게 스르르 잠이 들었다. 아이는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 엄마에게 《엄마가 유령이 되었어!》를 내밀었다.

자기 전 같이 그림책을 읽는 엄마와 딸

슬픈 이야기가 읽는 이에게 슬프게 와 닿는 건 공감 능력 때문이다.

아이는 하루 내 웃고 즐거울 때가 많다. (자의와 타의에 의해서) 하지만 모든 일상이 기쁜 아이가 타인의 아픔에 공감할 수 있을까?

슬픈 이야기가 슬프게 느껴지는 아이는 그것이 가능할 테다. (그렇기에 슬픈 이야기도 아이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엄마가 유령이 되었어!》 책을 덮은 뒤 아이는 안전한 자신의 지금으로 돌아온다. 그러면 안심이 된다. 이야기는 이야기로 끝난다.

그것이 아이에게는 위안이 된다. 그리고 지금 자신의 세계가 소중하다고 느낀다.


아빠가 되어보니 눈에 들어오는 세상 모든 아이들

6년 전(그러니까 아빠가 되기 전)에는 그림책을 읽은 기억이 없다. 지금은 매일 2~3권씩, 여태 몇백 권을 읽었을 만큼 일상이 되었다.

그렇듯 아빠가 되고 일상이 변했다. 그중 세상을 보는 시선과 감정이 크게 바뀌었다.

다 읽는데 5분 남짓 걸리는 《엄마가 유령이 되었어!》 그림책 한 권인데, 그 뒤 남는 여운이 진하다.

그 여운이 정말 엄마(또는 아빠)가 사라진 아이들은 오늘을 어떻게 보냈을까로 연결됐다.

위에서 아이들에게 슬픈 이야기도 필요하다 했지만, 역시 지금이 너무 슬픈 이에겐 무리다.

당장에 너무 슬픈 아이들도 다른 슬픔을 느끼며 살 수 있도록 아픔이 잘 아물길 바란다.

별가루가 자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