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그림책을 전집으로 사지 않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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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2~3살이 되면 본격적으로 책을 읽히고 싶어진다. (최소한 책을 가깝게 만들어 주고 싶다.)

이때부터 주변에서 좋다는 동화책 전집이나 그림책 전집이 눈에 들어온다. 어린이집 등·하원 길에 마주치는 판촉 사원들의 홍보에도 귀가 솔깃하다. (그들은 늘 “결국 사게 되실 텐데, 여기서 싸게 사세요.”라 말한다.)

좋다고 치자, 문제는 만만찮은 가격이다. 이 시기의 엄마, 아빠라면 한 번쯤은 고민에 빠진다. (아이 책을 전집으로 마련할 것인지? 단권으로 그때그때 구입할 것인지)

나 역시 이 딜레마에 한참 빠졌었다. 지금은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나름의 답을 찾았다.


성장 시기에 맞는 그림책이 따로 있다.

기저귀 떼기를 시작하고 배변 활동을 할 때 《어떤 화장실이 좋아? – 스즈키 노리카게 저》 책을 읽었다. (화장실 자체를 꺼리기 시작해서, 찾은 책이었다.)

편식에 대한 그림책을 읽은 뒤 실사를 잘하는 아이

그런가 하면 야채를 잘 먹었으면 하는 바람에 《난 토마토 절대 안 먹어 – 로렌 차일드 저》 책을 골랐다. 아이가 아주 재밌게 읽은 덕분에 식탁에서 분위기도 좋아졌다.

당직을 비롯해 바쁜 일정으로 아이와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줄었다. 《종이 아빠 – 이지은 저》 책이 많은 도움을 주었다. (아빠가 없는 밤, 자기 전 엄마와 이 책을 읽으며 아이가 아빠를 떠올려 주길 바랐다.)

자기 전 엄마와 아빠에 대한 그림책을 읽는 아이

6살이 된 뒤로 글자 읽기에 관심을 보여, 말놀이 책으로 준비한 《늑대야 늑대야, 뭐하니? – 에리크 팽튀,레이 사이야르 저》책이 아이에게 호응을 얻었다.

이처럼 단권으로 그림책을 구매할 경우, 아이의 성장 시기에 딱 알맞는 책을 고를 수 있다.

게다가 출판사별, 저자별 같은 주제에 관한 다양한 책을 읽어볼 수 있어 아이의 관심사에 적합한 책을 이어서 노출할 수 있다.

한번 찍은 그림책은 10번도 넘게 읽는 아이

《감기 걸린 물고기 – 박정섭 저》, 《이파라파 냐무냐무 – 이지은 저》, 《슈퍼 히어로의 똥 닦는 법 – 안영은, 최미란 저》, 《친구의 전설 – 이지은 저》, 《드라랄라 치과 – 윤담요 저》, 《알사탕 – 백희나 저》, 《두근두근 편의점 – 김영진 저》, 《바다 100층짜리 집 – 이와이 도시오 저》, 《꽁꽁꽁 좀비 – 윤종주 저》, 《으악, 도깨비다! – 유애로 저》, 《팥죽 할머니와 호랑이 – 조대언, 최숙희 저》 등등…

딸이 최소 30번 이상 읽은 (결국은 소장하게 된)그림책 중 당장 생각나는 것들을 타이핑했다.

좋아하는 그림책을 보며 즐거워하는 아이

별가루는 읽어보고 마음에 드는 책은 며칠에 걸쳐 10번이고 20번이고 계속 가져왔다.

나는 특별한 스케줄이 없으면 일주일 2번 정도는 도서관을 찾는다. (평일에는 혼자, 주말이면 아이와 함께)

한번 방문할 때 아이와 읽을 만한 그림책을 10권가량 빌린다. 3~4일 후 대여한 책을 반납하고 다시 10권을 빌린다.

도서관에 그림책으로 보러 방문한 가족

이렇게 일주일에 약 스무 권의 그림책을 빌리는 셈인데, 이중 딸의 간택을 받는 책은 절반 남짓이다.

표지나 그림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첫 페이지도 펼쳐보지 못한 책도 있고, 반복해 읽는 책으로 인해 외면받은 책도 있다.

이런 특징은 비단 별가루에게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이 시기의 많은 유아들에게 흔히 볼 수 있는 보편적인 특징이다.

대부분 어린이들은 이렇게 책을 읽는데, 전집을 구매한 경우는 어떨까?

전집도 나름 장점이 있는데

그건 바로 즉시성이다.

전집은 제품별 상이하나, 대부분은 몇십 권 구성이란 위용을 자랑한다. 그렇다 보니 아이가 애정하는 몇 권은 책 모서리가 반들반들한데 나머지 상당수는 새 책처럼 빳빳하다.

그럼에도 전집은 그 많은 구성 덕분에 부모 입장에서 즉시성이란 장점을 느끼게 해준다.

아빠와 산책 중 발견한 개구리가 흥미로운 딸

이 즉시성이 무엇인가 하면, 가령 산책을 하다 폴짝폴짝 뛰는 개구리를 보고 아이가 제법 흥미를 보일 경우, 집에 와서 개구리에 관한 책을 전집에서 바로 찾아볼 수 있다는 점이다.

또 마트에서 엄마 손을 놓고 마음대로 가는 아이를 잃어버린 후 찾은 날, 곧바로 집에서 유사한 주제의 책을 전집에서 골라 읽을 수 있다.

유아들이 읽는 전집은 이처럼 아이가 접할 수 있는 대부분의 상황을 소재로 하는 예가 많다. 그 때문에 아이에게 필요한 자극을 바로바로 제공할 수 있다. (그래서 책의 구성이 70권, 80권씩 된다. 심지어 200권에 달하는 제품도 있다.)

이런 강점은 시간적 여유가 부족한 (아이의 관심사를 파악해 제때 필요한 그림책을 마련하기 힘든) 부모에게는 편의성이 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내가 그림책을 단권으로 구매하는 이유

처음 딸에게 초첨책을 보여준 뒤로 여태껏 몇백 권의 책을 함께 읽었는지 모른다. 그 책들이 흔적으로 거실 책장에 나이테처럼 남아있다.

엄마 아빠가 딸 아이와 함께 그림책을 읽는 모습

책장에는 아이가 자라며 그때마다 흥미를 보인 책들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가끔은 그 책장을 보는 것만으로 어떤 즐거움이 떠오른다. (책 한 권 한 권마다 당시의 상황, 아이의 반응 등이 새겨져 있어서.)

지금껏 3번의 전집을 집에 들였다. (받기도 하고, 중고 거래를 한 것도 있다.) 그때는 앞서 말한 기분을 느낄 수 없었다. (결국 전집은 도미노 게임의 블록으로 즐겼다. 규격이 비슷하기 때문에 블록 대용으로 나쁘지 않았다.)

그림책으로 도미노 놀이를 하는 아빠와 딸

오늘 아이의 하루는 어떠했는지? 이번 주의 관심사는 무엇이었는지? 조금 시간을 내어 들여다보자. 그리고 찾아보자.

그에 관한 그림책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아이와 읽게 되면 어떤 반응을 보여줄 것인지 생각해 보자.

그 책은 환영받을 수도, 외면받을 수도 있으나 그 경험 자체로 책장에 물든다. 그 책장에는 그렇게 추억이 사박사박 쌓인다.
나는 이것이 좋아 전집 대신 그림책을 단권으로 구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