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중에 아이의 몸이 불덩이처럼 뜨겁다.
아빠는 떨리는 손으로 차키를 손에 쥐고, 엄마는 119를 누른다. 겨우 도착한 응급실에서 의사를 만나기까지 30분을 기다리는 것은 예삿일이다.
천년 같은 기다림 끝에 만난 의사는 미온수 마사지를 해보라거나, 해열제를 투여하고 지켜보자고 한다. (9세 미만의 아이들에게는 가능한 해열 주사를 놓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도대체 이 새벽에 응급실로 왜 왔을까 하는 허망함이 몰려온다.
이런 경험 덕분에 나는 웬만해선 별가루가 아파도 응급실을 찾지 않는다. 어떻게든 아이와 밤을 버티고 날이 밝을 때를 기다려 곧장 소아과를 찾는다.
그 밤을 버티는 핵심에 ‘해열제 교차복용’이 있다.
아직 아이를 데리고 응급실을 가보지 않았는데 이 글을 만났다면 끝까지 읽어보길 권한다. 아마도 이 글이 큰 복(福)이 될 테다.
응급실에서 열나는 아이를 그냥 돌려보내는 이유
놀란 마음으로 급히 찾은 응급실에서 의사는 해열제 처방 후 대수롭지 않게 며칠 경과를 보자며 돌려보내기 일쑤다.
고열로 축 져진 아이를 보는 부모 마음에 ‘해열 주사’나 ‘항생제’라도 주면 조금이나마 위안이 될 텐데 의료진은 단호하다.
아이들에게 고열을 유발하는 질병은 (대부분은 감기, 독감 등이다.) 통상 72시간 이상 지속되지 않는다. 따라서 만 72시간, 약 4일 이상 발열이 지속되면 그때 각종 검사나 처방이 이루어진다.
열이 나는 것은 질병에 대응하는 자연스러운 경과로, 인위적인 방법으로 열을 급격히 떨어뜨린다면 오히려 면역 체계의 교란을 가져올 수 있다.
따라서 아이가 어리면 어릴수록 ‘해열 주사’ 같은 처방은 하지 않는다.
게다가 단순 열이 나는 아이에게는, 하루 이틀 뒤 동반되는 증상을 확인해서 병명을 진단하고 치료가 이루어진다. (가래가 끓는 기침이 나타나면 폐렴, 열꽃이 피면 돌발진 같은 식으로)
그렇다 보니 열나는 아이를 데리고 밤중에 급히 응급실을 찾았는데 뾰족한 수 없이 그냥 집으로 돌아왔다는 후일담이 많다.
해열제 종류 feat.이부프로펜과 아세트 아미노펜
시중에 판매되는 여러 해열제는 ‘이부프로펜’계열과 ‘아세트 아미노펜’계열의 제품으로 분류할 수 있다. (흔히 타이레놀이라 부르는 약은 아세트 아미노펜 계열의 해열제, 멕시부프로펜 제품은 이부프로펜과 같은 계열의 해열제로 이해하면 된다.)
좀 더 쉬운 설명으로 아이를 키우는 집 대부분에서 상비약으로 구비하고 있는 ‘챔프 해열제’ 중, 빨간색은 아세트 아미노펜 계열, 파란색 이부프로펜 계열 성분으로 만든 것이다.
이부프로펜 (멕시부프로펜)
이렇게 구분하는 실익은 각 성분마다 아이에게 미치는 영향과 반응이 다르기 때문이다.
우선 챔프 파란색에 해당하는 이부프로펜 해열제는 생후 6개월 이하의 아이에게는 사용할 수 없다.
이부프로펜 해열제는 열을 내림과 동시에 염증에 대한 통증을 줄이는 소염 효과도 있다. 하지만 복용량이 과할 때는 위장 트러블을 일으킬 수 있다.
아세트 아미노펜 (타이레놀)
반면 챔프 빨간색의 아세트 아미노펜 해열제는 생후 4개월이 지난 아이부터 사용할 수 있다.
이부프로펜에 비해 상비약으로 좀 더 일찍 그 역할을 하는 셈이다.
아세트 아미노펜은 그 성분이 90% 이상 간에서 대사되기 때문에 과복용 시 간에 무리가 갈 수 있다. (「우리 아이 열나요 – 신재원 저」 참고)
아직 태어난 지 120일이 지나지 않은 아기는 해열제 복용 시 의사의 진단과 처방이 필수다. (이럴 때 이용하라고 119가 있다.)
해열제 용량 계산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는 챔프 해열제를 예로, 제품 포장 박스 뒷면에 ‘어린이 1회 복용량’에 대한 안내가 있다.
이 안내는 아이의 연령을 기준으로 한 것으로, 아이의 나이 대신 체중에 따라 복용량을 정하는 것이 보다 아이에게 알맞은 용량의 해열제를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0세부터 6세까지 우리집 소아과 – 은성훈, 양세령 저」의 내용을 참고하면, 소아의 약용량이 체중에 따라 비례하는 것이 아닌 체표면적에 영향을 받는 것이라고 한다. 쉽게 말하면 신체의 겉넓이를 고려해 복용량을 정해야 하는 것인데 응급 시 가정에서 엄마, 아빠가 그것을 계산한다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따라서 체표면적과 상호 관련이 많다고 보는 체중을 기준으로 이용한다.)
1회분 아세트 아미노펜 용량 계산
아세트 아미노펜의 경우는 1회 복용 시 체중 1kg당 10~15mg을 먹인다. 아이의 체중을 1/2~1/3 정도로 나누는 값과 같다.
용량 단위를 ml로 했을 때 3~4살의 15kg 체중인 아이는 한번 먹을 때 5~7.5ml의 아세트 아미노펜을 복용하면 된다.
나는 이 계산 용량에 중간값의 해열제를 사용하기 위해 ‘아이 체중 X 0.4 = 1회 복용 ml’으로 1회분 해열제 용량을 계산한다. (39도 이상의 고열이 나는 경우는 체중에 0.5를 곱해 복용량을 조금 더 늘린다.)
1회분 이부프로펜 용량 계산
이부프로펜은 좀 더 적은 양으로 1회 사용한다. 체중 1kg당 5~10mg을 먹인다. 아이 체중의 1/3 ~ 1/4 정도의 양에 해당한다.
이 역시 ‘아이 체중 X 0.25 = 1회 복용 ml’정도로 계산해 아이에게 이부프로펜을 준다.
해열제 복용 간격
해열제를 먹은 뒤 1시간 정도 지나면 열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보통은 1도, 많게는 1.5도 가량 떨어진다.
아세트 아미노펜(챔프 빨강)이 이부프로펜(챔프 파랑)에 비해 해열 효과 좀 더 일찍 나타난다. 복용 후 30분에서 1시간 내 열이 떨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아세트 아미노펜의 효과는 4~6시간 지속되고 그 이상 지나면 열이 다시 오를 수 있다.
이부프로펜은 복용 후 1~2시간 정도 후 해열 효과가 나타난다. 아세트 아미노펜과 비교하면 효과가 뒤에 나타난다.
대신 지속시간은 6~8시간 정도로 더 길다.
각 해열제마다 반응 및 지속 시간이 다르지만 일단 먹으면 열이 떨어지는 효과가 나타난다. 그리고 약효가 떨어지면 다시 열이 오르기도 한다.
때문에 2번, 3번 해열제를 먹여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는데, 이때는 각 해열제별 지속시간과 함께 1일 최대 복용량을 같이 고려해 해열제 복용 간격을 정한다.
아세트 아미노펜(챔프 빨간색)의 하루 최대 허용량은 ‘자녀 체중 X 2.5 = OOml’으로 계산할 수 있다.
이부프로펜(챔프 파란색)은 ‘자녀 체중 X 2.3 = OOml’으로 사용한다. (단, 30kg 미만의 체중인 아이에겐 1일 최대 25ml 미만의 이부프로펜 사용이 권고된다.)
해열제 교차복용 시간
해열제를 한번 먹인 뒤 곧바로 열이 떨어지면 좋으련만, 해열제가 잘 들지 않는 경우도 있다. 여전히 열 때문에 힘들어하는 아이를 보고 있자니 엄마, 아빠 마음이 타들어 간다.
이런 상황에서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 ‘해열제 교차복용’이다. (의료진 중에는 해열제 교차복용에 대해 회의적인 의견을 갖고 있는 예도 있음을 미리 알려둔다.)
아이들이 해열제를 과다복용하면 안 된다는 전제로, (아세트 아미노펜은 간에 무리가 가고, 이부프로펜은 위장 문제를 야기하므로) 각 해열제는 다음 복용까지 4~6시간의 텀을 두고 다시 복용하는 것이 일반이다.
예외적으로는, 어느 성분의 것이든 첫 번째 해열제를 복용한 뒤에도 계속 열이 오를 때는 다른 성분의 해열제를 이어서 먹일 수 있다.
해열제를 교차복용하는 것이다.
아세트 아미노펜과 이부프로펜이 체내에 영향을 미치는 곳과 작용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것에 착안해서 말이다.
나는 별가루가 처음 먹이는 해열제로 ,아세트 아미노펜(챔프 빨강)이 좀 더 빨리 해열 효과가 나타나고, 1일 최대 복용량 또한 많다는 점을 고려해 챔프 빨간색을 준다.
가령 20:00경 아이에게 아세트 아미노펜을 복용토록 했다면, 해열제를 먹고 1~2시간 정도를 기다려 아이의 체온을 수시로 확인한다.
2시간이 지난 22:00경 여전히 고열로 아이가 힘들어하면 챔프 파란색(이부프로펜) 해열제를 한 번 더 먹도록 한다.
마찬가지 열이 잡히지 않으면 다시 2시간 뒤인 24:00경 최초 20:00경 먹었던 챔프 빨간색 아세트 아미노펜을 다시 복용케 한다.
그러면 지금까지 6시간 동안 3번의 해열제를 먹은 셈이다. (아세트 아미노펜은 4시간 간격으로 2번, 이부프로펜은 2시간 전에 1번 먹은 상태이다.)
그럼에도 계속 열이 난다면 02:00경 2번째 이부프로펜을 한 번 더 먹인다.
이렇게 해열제를 교차복용하면(3회차 복용 안에는) 고열로 애먹던 별가루의 체온이 내려갔다.
그러나 이 방법은 (아무리 1일 최대 복용량을 지켰다할지라도)아이가 단시간에 해열제를 자주, 많이 복용한다는 단점이 있다.
따라서 심하지 않다면 4~6시간의 해열제 복용간격을 잘 지켜서 필요한 만큼만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럼에도 밤중에 열나는 아기를 안고 응급실에 뛰어가는 그림을 떠올리면, 해열제 교차복용 방법을 쓰는 것이 100번 더 낫다.
응급실에 아이를 데려가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다.
좋은 열과 나쁜 열
아이가 아파서 열나는 것은 염증에 대한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열이 적당한 경우라면 면역 세포의 기능이 향상하고 세균은 기능이 떨어진다. 항체나 백혈구는 고온에서 더 활발히 작용키도 한다.
바이러스도 주위의 온도에 민감해 체온이 증가하면 복제 속도가 느려지기도 한다.
이처럼 열이 오르는 것이 무조건 나쁘다고 볼 수는 없다.
우리는 흔히 36.5도를 정상 체온으로 알고 있다.
아이들은 조금 다르다. 어리면 어릴수록 정상 체온이 어른들보다 높다.
돌이 지나지 않은 아가들은 37.5도, 3세 이하는 37.2도, 5세 이하는 37가 정상 체온이다. 성인처럼 36.5도가 정상 체온이 되는 건 보통 만 7세 이후(초등학교 1학년부터)가 되어야 한다. (「의사아빠 깜신의 육아 시크릿 – 김종엽 저」 참고)
따라서 체온계로 확인했을 때 38도가 넘는 열이 확인되더라도, 어린 아이는 고열로 느끼지 않는 예가 많다. (사진의 별가루는 38도의 열이 확인되었는데 평소처럼 잘 놀았다.)
열이 있더라도 아이의 컨디션이 좋다면 당장 해열제를 먹이는 것보다 시간을 두고 증상의 추이를 지켜보는 것이 좋다.
그렇다고 열이 치솟도록 놔두는 것이 마냥 좋다는 것은 아니다. 통상 체온이 1도 오르면 신진대사율은 10% 증가한다. 더 많은 에너지를 쓰는 것이다.
그러나 아픈 아이들은 잘 먹지도 잘 자지도 못하니 에너지는 더 많이 쓰고 그것을 다시 채우지는 못한다. 그러다 절로 지치고 쳐진다. 심하면 탈수증이 오기도 한다. (열나는 것 이상으로 탈수는 아이에게 심각한 문제다.)
무엇보다 계속 오르는 열을 그냥 두다 보면 자칫 열성경련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는 열이 날 때 생길 수 있는 최악의 상태로 예방을 위해서라도 해열제를 쓰는 것이 좋다.
글이 길어지는 관계로, 다음 포스팅을 통해 ‘해열제 먹고 토한 아이 다시 복용해야 하나?’, ‘자는 아이를 깨워 해열제를 먹여야 하나?’, ‘미온수 마사지의 효과’, ‘열성경련’ 등 열나는 아이에 관한 이야기를 이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