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팥죽할멈과 호랑이’가, 어릴 적 몇 번이나 즐겨봤던 ‘나 홀로 집에’ 영화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또 갖가지 트릭과 함정을 준비해 두고 강한 적을 물리치는 디펜스 게임과도 닮았다.
이렇듯 ‘팥죽할멈과 호랑이’는 유명한 오락 영화에서 느낄 수 있는 즐거움과 디펜스 게임만큼 재밌는 유희를 갖고 있다. 그 때문에 세대를 뛰어넘어 지금의 아이들에게도 여전히 잘 읽히는 이야기다.
그런데 악역으로 나오는 호랑이가 사실 악당이 아니라면?
본래 이야기를 살짝 비튼 패러디는 ‘팥죽할멈과 호랑이’에도 통한다.
우리 집의 6살(59개월) 아이가 이 책을 며칠 내내 잠자리에 갖고 온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팥죽할멈과 호랑이
별가루는 5살쯤부터 전래동화를 즐겨 읽었다. ‘흥부 놀부’, ‘콩쥐 팥쥐’ 등 유명한 스테디셀러부터 시작해서 자연스러운 수순으로 ‘팥죽할멈과 호랑이’까지 왔다.
서두에서 밝힌 것처럼 이 책은 오락 영화와 디펜스 게임처럼 재밌는 요소가 이야기 전반에 깔려있다.
알밤, 자라, 개똥, 송곳, 절구, 멍석, 지게 같은 잡동사니들이 꾀를 내어 힘 센 호랑이를 물리치는 장면은 아이들에게 어떤 카타르시스를 전한다. (좀 과장을 하자면)
게다가 작고 약한 물건들이 (절구통은 약한 것에서 뺴자) 힘을 합쳐 호랑이를 쫓아내는 내용은 협동에 대한 교훈도 담고 있다.
곁에 있는 5~6살 아이가 아직 ‘팥죽할멈과 호랑이’ 책을 읽어보지 않았다면 당장 들려줄 즐거운 이야기 하나가 남은 셈이다.
팥죽 호랑이와 일곱 녀석
그런데 힘세고 흉악한 호랑이도 나름 할 말이 있지 않을까?
「팥죽 호랑이와 일곱 녀석 – 최은옥 글, 이준선 그림」을 보면 호랑이의 입장이 잘 정리되어 있다.
팥죽은커녕 된통 당하고 물속에 빠진 호랑이가 우여곡절 끝에 빠져나왔다.
당장 다시 팥죽할멈에게 달려가 복수하고 싶지만, 또다시 혼꾸멍이 날까 봐 겁이 난다. 그래서 찾아간 것이 산신령이다.
엉뚱하게도 산신령은 호랑이에게 ① 팥 농사를 지어, ② 맛있는 팥죽을 쑤어오면 복수할 방법을 알려주겠다고 한다. 하지만 난생 처음 농사를 지어보는 호랑이는 실패를 거듭하고 팥죽 또한 만들어 갔으나 맛이 없다고 퇴짜를 맞는다.
복수하겠다는 일념으로, 팥 농사와 맛있는 팥죽 쑤기에 매진한 호랑이는 문득 팥죽 할머니가 얼마나 어렵게 팥죽 한 그릇을 만들었는지 깨닫는다. (그걸 빼앗으려 했던 자신의 과거를 반성한다.)
산신령은 그런 호랑이의 모습을 알아채고, 때가 되었다며 팥죽할멈을 찾아가 보라 한다.
여기서부터 아이들이 재밌어한다. (나도 신선해서 좋았다. 패러디의 참맛)
웬걸, 일곱 녀석(알밤, 자라, 개똥, 송곳, 절구, 멍석, 지게)들은 자신들의 호랑이를 물리친 공을 앞세워 팥죽할멈을 마구 부려 먹고 있었다.
호랑이는 이를 보고 격분! 일곱 녀석이 자신에게 했던 것처럼 교묘하고도 신통한 트릭과 계획을 마련해 하룻밤 사이 이들을 일망타진한다.
패러디의 재미를 알게 된 6살
별가루는 아는 듯한데 다른 전개로 이어지는 이야기에 솔깃해했다. 호랑이가 일곱 녀석을 혼내줄 때부터는 푹 빠져들었다.
그 뒤 자기 전에 읽을 책을 골라 오랬더니 이틀 내 ‘팥죽 호랑이와 일곱 녀석’을 가져온다. (사실 나도 재밌었다. 특히 발상의 전환이 이런 맛을 주는구나 싶어 좋았다.)
아침에 출근하며 자는 아이를 깨운다.
한 번에 일어나는 날도 있지만 안 그런 날이 더 많다. 이리저리 꼼지락거리면서도 눈은 안 뜨는 별가루에게 한마디 툭 건넸다.
“늑대가 아기 돼지 삼 형제 집 무너뜨리고 잡아먹었잖아. 그런데 늑대가 일부러 그런 게 아니였데.”
‘팔죽할멈과 호랑이’ 그리고 ‘팥죽 호랑이와 일곱 녀석’을 읽고 패러디의 재미를 알게 된 6살은 눈 부비며 일어나 “그럼 늑대가 왜 그랬어?”하고 묻는다.
주말에 도서관에서 「늑대가 들려주는 아기 돼지 삼 형제 이야기 – 존 셰스카 글, 레인 스미스 그림」를 가져올 빌드업을 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