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명치 주변에서 태동이 자주 느껴졌다. (평소 배꼽 주변에서 자주 느껴지던 것과 달리)
산부인과에서 초음파 진료를 받는 날 아기가 거꾸로 있는 걸 확인했다.
역아(逆兒)였다.
출산할 때 머리보다 다리가 먼저 나오는 아기는 좁은 산도에 머리가 끼여 뇌 손상을 입을 수 있다. 설명을 듣고 가슴이 철렁했다.
이런 엄마, 아빠의 심정을 아는 의사 선생님은 스스로 위치를 바로잡는 아기가 많으며 분만 전에만 똑바로 있으면 되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역아 돌리기
임신 후기가 되니, 임신 초반만큼 잦은 빈도로 산부인과 진료를 받았다.
거꾸로 있다는 아기는 다행히도 몇 차례 더 병원을 찾았을 때 알아서 본래대로 자세를 고쳤다.
참으로 안도한 순간이었다.
걱정이 깊었던 와이프도 비로소 근심을 털어냈다.
역아에 관한 원인은 아직 정확하게 알 수 없다고 한다.
자궁이 기형적이거나, 다산일 경우, 양수가 과다할 때, 자궁 근종이 있는 경우를 포함해 다양한 사례에 역아가 확인된다고 한다. (우리는 이런 사례에 해당하는 바가 없었다.)
아내는 의사 선생님의 조언과 주변에 물음을 통해 역아 돌리기에 도움이 된다는 스트레칭을 자주 했다.
요가 자세들과 비슷했는데 흔히 고양이 자세라 하는 엎드려서 골반을 높이 드는 동작을 반복했다.
또 누워서 발뒤꿈치를 엉덩이 쪽으로 당겨 무릎을 세운 뒤 허리 아래에 쿠션을 받치는 자세를 한참 유지했다.
그 덕분이었을까?!
다행히 거꾸로 선 아이는 똑바로 돌아와 엄마, 아빠의 놀란 가슴을 진정시켜 주었다.
자연분만과 제왕절개
출산예정일 20일 전에도 역아가 바로 돌아오지 않으면 분만 방법을 제왕절개로 해야 한다고 했다.
임신 후기에 접어들어, 아내는 주위에 자연분만과 제왕절개를 한 지인들을 찾아 여러 후기를 접했다. (한 줄로 정리하자면 산통에 대해 자연분만은 일시불, 제왕절개는 할부라고 한다.)
나도 잘은 모르지만 나름 알아본 바로는 자연분만이 좀 더 장점이 많은 듯 보였다. 하지만 내가 아기를 낳는 것이 아닌 이상 여기에 가타부타할 말은 없었다. (이후 출산에 대한 글도 쓰겠지만, 분만일에 너무 힘들어하는 아내를 옆에서 보고 이제 아이는 낳지 말자고 말했던 나다.)
담당 의사 선생님은 최근 아기 체중이 잘 늘지 않는데, 작은 아기는 자연분만에 도움이 된다며 어느 정도 방향을 잡아주었다.
역아를 걱정했던 문제도 해결되어 자연스레 자연분만으로 출산 방법은 가닥을 잡아갔다.
와이프는 아기가 태어날 때, 엄마의 골반 개폐력이 관건이라며 유튜브 등을 통해 순산에 도움 되는 골반 체조를 따라 했다.
식단과 불면증이란 임신 후기의 복병
길었던 열 달이란 임신의 여정이 끝나가고 있음이 점차 실감 났다. 뭔가 커다란 변화를 앞두고 차분해지는 감정을 자주 느꼈다.
와이프는 그런 감상에 빠지는 나와 달리, 임신 후기가 되자 푹 자지 못해 힘들어했다. 수면의 질이 떨어졌다.
평소 잠 하나만큼은 잘 자는 아내라 장난삼아 매번 부럽다고 했었는데, 밤에 뒤척이기 일쑤였다.
다행히 불면증에 시달릴 만큼 심하진 않았다. (주위에는 심하게 잠을 자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예도 많았다.)
마땅히 약 같은 것도 쓸 수 없어 낮에 산책하거나 따뜻한 물로 샤워하고 낮잠을 안 자는 고전적인 대안들에 집중했다.
또 얼마 후면 아기가 태어나 직접 모유 수유를 하게 되므로 먹는 음식(녹황색 채소, 해조류 등)에 좀 더 신경을 썼다.
자극적인 음식을 멀리했다. 내 식단도 비슷하게 밍밍해졌다. 일부러 밖에서 햄버거를 사 먹고 퇴근한 날이 몇 번 있었다.
이렇게 아기를 만나게 되는 날이 서서히 가까워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