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분만할 때 무통 주사(경막외마취)를 맞으면 5~20%가량 통증이 줄어든다.
자궁 경부가 4~5cm가량 열리면 경막외마취 주사를 사용할 수 있다. (출산을 경험한 많은 산모가 이를 ‘무통 천국’이라 후술한다.)
허리 뒤쪽에 주사를 놓아 척추의 경막외강에 마취제를 주입한다. 하반신 일부를 마취하므로 통증은 줄이고 힘주기는 반복할 수 있다.
무통 주사(경막외마취)를 맞으면 진통이 길어진다?
출산 전 ‘무통 주사’라는 옵션을 사용할 것인지 선택한다. (비용이 발생하는 유료 옵션이므로)
병원 상담 전 주변에서 정보를 구해보니 무통 주사를 두고 ‘조삼모사’라는 설명과 ‘무통 천국’이라는 답이 상충하였다.
의사 선생님의 설명은 경막외마취(무통 주사)를 맞고 당장 10~15분은 자궁 수축이 느려질 수 있으나 30분 내 정상으로 돌아온다고 했다.
고민할 것이 없었다.
초산일 경우 분만 시간이 약 12~15시간가량 된다는데, 여기서 30분이 더 늘어나고 줄어들고는 더 생각할 거리가 아니었다.
분만 당일.
자궁 문이 3cm가량 열렸을 때부터 와이프는 많이 힘들어했다. 상담할 때 선택했던 무통 주사를 요청했지만, 의료진은 단호했다.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했다. 최소한 4~5cm 정도 자궁 경부가 열릴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몇 번을 요청한 끝에 약 4cm 정도 자궁 문이 열렸을 때 겨우 경막외마취를 할 수 있었다.
이미 와이프가 아주 고통스러워한 뒤였다. (비할 바는 아니지만 옆에서 보는 나 또한 진이 빠졌다.)
다행히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다.
거친 숨을 몰아쉬던 아내와 조금이나마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되었다.
‘조금만 더 힘내’ (이미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거 알지만), ‘조금만 더 있으면 다 될 거야’ (그 조금이 언제인지 모르지만)
나는 실효가 없는 응원과 위로를 계속 건넸다.
마냥 더디다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조금씩 열린 자궁 문이 마침내 10cm가량 되었다.
의사 선생님이 회음부를 절개했고(함부로 찢어지거나 열상으로 자궁 경부가 허는 것을 방지) 잠시 뒤 아기의 까만 머리가 보였다.
이제 아기가 태어나는구나 싶었다. 하지만 시간이 멈춘 듯 그 상태로 한참을 또 보내야 했다.
이제 아기 낳지 말자
아기의 까만 머리끝이 보였다 안보이기를 반복했다.
약 30~40분간 이 씨름은 계속됐다. 의료진의 주문 사항이 많아지고 빨라졌다. (어떻게 힘을 주고, 언제 힘을 주는지에 관한 것들)
아내는 그 말이 들리는지 또는 이해되는지 상관없이 막무가내로 마지막 힘을 다하고 있었다. 얼마나 애를 썼던지 출산 후 와이프의 얼굴부터 목, 가슴까지 울긋불긋 실핏줄이 다 터졌다.
00:51. 드디어 튼튼이(태명)가 태어났다.
17시 무렵, 둘이 분만실에 들어와 약 8시간 만에 우리 가족은 셋이 되었다.
나는 절로 눈물이 핑 돌았다.
와이프도 아기도 참으로 험난한 문턱을 넘어 나에게 왔다. 나는 그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고마움과 무력함이 뒤범벅되었다.)
수고했다거나 감사하다는 말보다 ‘우리 이제 아기 더 낳지 말자’는 말이 불쑥 나왔다. 분만 과정을 옆에서 본 내 솔직한 마음이었다.
정신없이 엉겁결에 탯줄을 잘랐다.
안도가 되자 아내에게 응원과 위로를, 의료진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건넸다.
아기는 좁은 산도를 빠져나오느라 얼굴은 납작하고 머리는 볼록했다. (이를 ‘신생아 콘헤드’라 표현하는데 본래는 ‘응형’이라고 한다. 성인처럼 머리뼈가 딱딱하지 않아 그런 것으로 시간이 지나면 정상으로 돌아온다.)
아내는 아기를 보고 작은 목소리로 ‘우리 아기 왜 이렇게 쭈글쭈글해?’라며 안타까워했다. 그 모습을 보니 이제 좀 살만한가보다 싶어 긴장이 풀렸다.
의외로 빨리 회복하는 와이프 (feat. 자연분만)
무의식적으로 TV에 나온 장면들처럼 우리는 아기 손가락, 발가락이 10개인지 살폈다.
잠시 뒤 깨끗이 씻은 아기가 엄마 품에 안겼다.
아기에게 처음으로 젖을 물렸다.
열 달을 함께 했지만, 막상 첫 만남은 어색했다. 벅참과 낯섦이 섞였다.
얼마 뒤 아내는 회복실로 아기는 신생아실로 옮겨졌다.
큰일을 치른 터라 와이프의 상태가 걱정되었는데 내 생각보다 컨디션이 좋아 보였다.
거동도 못 할 것 같았는데 천천히나마 스스로 걸을 수 있었다. 통증은 여전했으나 출산할 때 겪은 진통에 비할 바가 아니라 했다.
약 2시간 정도 회복실에 머물며 분만실에서는 나눌 수 없었던 이야기를 했다.
너무 큰일을 겪고 너무 큰 변화를 마주해서인지 현실감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