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가루가 24개월이 되었을 때 처음 어린이집을 보냈다.
아직 꼬물꼬물 아기 티를 채 벗지 못한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화재 대피 훈련을 했다며 고사리 같은 손으로 입을 막고 병아리처럼 총총 뛰어 대피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 모습이 귀여운 것은 더 말할 것 없이) ‘기관에서는 벌써 아이들에게 안전교육을 하는구나’ 싶어 놀랐다.
꽤 실감 나게 하는지라 사이렌이 울리면 신발도 신지 않고 버선발로 건물 밖으로 대피해 아이의 양말이 까맸다. 제법 그럴싸한 훈련이라 생각했다.
그 뒤, 분기에 한 번 꼴로 아이와 안전 체험을 할 수 있는 시설을 찾는다.
그 중 경남 안전체험관을 특히 추천하고 싶다. (다른 좋은 곳도 많았지만 경남 안전체험관이 특히 좋았기 때문)
경남 안전체험관 정보
∙ 경남 합천군 용주면 고품부흥1길 10-28
∙ ☏ 055-211-5497
∙ 09:00 ~ 17:00 운영(체험은 10시 시작)
∙ 10분 전 각 체험관 앞 대기
∙ 신청자 포함된 등본, 운동화 준비
∙ 대형 주차장, 푸드 코트 有
∙ 노쇼 행위 페널티(한 달간 예약 불가)
영국을 비롯해 유럽에서 몇 해 머문 아내의 말을 빌자면, 외국에서 이 정도 수준의 체험을 하려면 10만 원 이상 지불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여기서는 무료로 체험이 가능하다.)
아내의 평가에 심히 공감하는 나는 열흘 전, 아이와 경남 안전체험관을 재방문했다. (7월에 처음 방문 후 10월에 다시 안전 체험관을 찾았다.)
재방문 역시 무척 마음에 들었기에, 급기야 블로그 한편에 자리를 만들어 그 기억을 담아둔다.
예약이 어려운 경남 안전체험관 feat.미세한 예약 팁
검색을 통해 이 글을 읽고 있는 이라면 이미 ‘경남 안전체험관’이 좋다는 것은 알고 있을 듯하다. 이 체험관이 특별히 좋은 것은 아래에서 충분히 다루려 한다.
우선 말하고 싶은 것은, 아이들에게 그토록 추천하고픈 안전체험관의 예약이 무척이나 어렵다는 점이다. (아주, 상당히 힘들다.)
매월 1일에 경남 안전체험관 홈페이지에서 다음 달 원하는 날을 골라 체험을 예약할 수 있다. (월요일은 휴관이니 참고)
예를 들어 11월 27일 월요일에 방문하려면 10월 1일에 예약하면 된다.
우리는 10월에 방문하기 위해 8월 31일 자정을 기다렸다가 9월 1일이 바뀌는 00:00 시에 접속했다. 아래 사진은 접속 후 자정에서 40분 지난 시점의 예약 현황이다. 대부분의 체험이 예약 완료되었다.
경남 안전체험관에서는 유아들 기준으로 하루 최대 네 가지 체험을 할 수 있다. (응급처치 체험은 10세 이상 참가할 수 있다.)
‘화재 안전 체험’, ‘승강기 안전체험’, ‘재난 안전 체험’, ‘어린이 화재 출동’을 예약해서 참가할 수 있다.
이 중 가장 인기가 많은 체험은 ‘어린이 화재 출동’이다.
따라서 하루에 네 가지를 다 체험하려면 제일 먼저 ‘어린이 화재 출동’부터 예약한 뒤 원하는 순서대로 다른 체험을 예약하도록 권한다.
만약 방문을 희망하는 날에 도저히 네 가지 체험을 전부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개인적으로 ‘승강기 안전 체험’을 빼고 ‘재난 안전 체험’과 ‘화재 안전 체험’을 추천한다. (지극히 주관적인 의견이다. 별가루가 흥미를 보인 순서와 다른 체험관에서는 경험이 어려운 희소함을 고려한 개인적 고민이 그러하다.)
미세하지만 예약할 때 도움이 되는 팁을 말한다면 각각의 체험 예약 과정에서 필요한 ‘아이의 이름’, ‘출생 년도’, ‘소속 기관’, ‘거주지’, ‘보호자 이름’, ‘보호자 연락처’ 등의 세부 정보를 입력할 때 이 내용들을 틀리게 써도 예약을 확정하는 데 지장이 없다는 것이다.
일단 예약 완료까지 마친 다음 잘못 입력한 정보를 다시 수정할 수 있다.
따라서 정확한 내용을 하나하나 써넣다가 다른 체험 예약을 늦게 하는 대신, 키보드 손 가는 대로 (틀리더라도) 입력하고 완료를 누른다.
그렇게 4가지 체험을 다 예약한 뒤 다시 예약 현황에서 틀린 내용을 수정하는 방법이 예약하는데 유리하다. (현장 방문 시 입력 정보를 확인하므로 잘못 기재한 내용은 필히 수정한다.)
화재 안전 체험
입장 10분 전, 2층 체험관 앞에서 대기하니 소방관이 왔다. (실제 소방공무원이 체험을 진행한다.)
화재 안전 체험은 아이들이 소화기에 관해 배우는 것으로 시작했다.
직접 안전핀을 뽑는 것부터 배웠다. 생각보다 소화기의 분사 시간이 길지 않으므로 불길이 크다면 직접 진화하는 대신 대피하고 신고할 것을 당부했다. (소화기 1개의 분사 가능 시간은 15~20초 남짓이라고 한다.)
잠시 후 가상으로 가족들과 캠핑장에 놀러 온 상황이 시작됐다.
이때 바베큐를 마치고 불씨를 제대로 끄지 않아 캠핑장에 화재가 발생한다. 별가루는 주변의 소화기를 찾아 조금 전에 배운 대로 안전핀을 제거한 뒤 소화기로 불을 끄는 체험을 했다. (아이들 소화기는 실제 분말 대신 물이 발사되도록 준비되어있다.)
여기까지 마친 뒤 불이 났을 때 대피하는 요령에 대해 배운다.
고개를 숙이고 입을 막은 뒤 자세를 낮춰 화재 현장에서 대피한다. 이때 출구를 찾았다고 급히 열어서는 안 된다. 문 뒤편에도 불이 난 상황일 수 있기 때문이다.
소방관은 아이들에게 문 손잡이에 손등으로 열기가 있는지 확인하는 것을 알려주었다.
대피 요령을 배운 대로 실습한다.
이번에는 가족들과 노래방에 간 상황이 준비되어 있다. ‘문어의 꿈’ 반주가 나오자, 자기가 잘하는 노래라며 마이크를 잡는 별가루.
신나게 노래를 부르는데 사이렌이 울린다. 화재가 발생한 것이다.
배운 대로 소방관을 뒤따라 비상 통로로 대피한다. (무해한) 연기도 나오고, 어두컴컴하니 꽤 실감 나는 상황이다.
무사히 대피를 마친 뒤, 참가자들이 어떻게 대피했는지 녹화된 영상으로 모니터링 할 수 있다.
기대 이상, 별가루는 안전 체험에 잘 임했고 나 역시 평소 화재 안전에 관해 아주 무지했음을 느낀 체험이었다.
승강기 안전 체험
두 번째로 승강기 안전 체험에 참여했다.
에스컬레이터와 엘리베이터의 안전한 사용에 관한 교육이 진행됐다.
인상 깊었던 부분은 강아지를 키우는 경우 엘리베이터 문을 두고 목줄이 끼이는 상황에 대한 교육이었다.
이어서 옷이나 가방은 물론이고 엘리베이터에 손이 끼지 않도록 어린이들에게 경각심을 확실히 일깨워 주었다.
안전한 에스컬레이터 탑승 체험까지 마친 뒤, 따로 마련된 블럭을 만드는 공간으로 이동했다. 약 10분 정도, 보호자와 함께 설명서를 따라 엘리베이터 레고를 조립했다.
나는 이런 쪽은 영 취미가 없는데, 별가루는 근래 블럭 방을 좀 다녔다고 도리어 아빠를 리드해 블럭을 완성했다.
돈까스와 놀이터
10:00에 첫 번째 체험과 11:30의 두 번째 체험까지 종료한 뒤 13:30에 있는 세 번째 체험 사이 점심을 먹었다. (안전체험관에 근무하는 소방관들도 이때 다들 식사하는 듯)
구내식당 같은 푸드 코트에서 아이들과 식사했다. 메뉴는 크게 ‘정식’과 ‘돈까스’ 2가지 정도로 선택지가 다양하진 않다. (경남 안전체험관 주위에 식당이 없으므로 애초에 선택권이 없는 상황)
다행히도 맛은 나쁘지 않았고, 공공기관에서 운영하기 때문일까? 1인당 7,000원 정도의 비용으로 돈까스를 먹을 수 있어 가격이 합리적이라 느껴졌다.
식사를 마친 뒤 안전체험관 앞에 마련된 야외 놀이터에 가서 30분 정도 뛰놀았다. 간간히 소방 헬기가 날아다녔는데, 소방관의 말로는 실제 구조 출동을 가는 것이라 했다.
경남 안전체험관 곳곳에는 인기 애니메이션 로보카 폴리의 캐릭터가 곳곳에 배치되어 있고 실내 중앙 홀에는 벽에다 레고를 붙이고 놀 수 있는 장난감도 있어 아이들이 각 체험 사이 쉬는 시간을 무료하지 않게 보낼 수 있다.
재난 안전 체험
재난 안전 체험은 첫 번째로 지진 상황을 체험했다.
집에서 가족들과 식사 시간에 지진이 났다는 가정이었다. 소방관의 설명대로 별가루와 함께 신속히 식탁 아래로 내려가 식탁 다리를 붙잡고 진동이 멈출 때까지 기다렸다.
지진이 멎은 뒤에는 가스 밸브를 잠그고 두꺼비집을 열어 전기 스위치를 내리는 조치를 취했다. 또 출입문을 개방했다.
지진은 잠시 멈춘 뒤 곧이어 여진이 여러 차례 이어질 수 있다는 설명과 함께 2차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가스와 전기는 차단하는 것이 안전함을 배웠다.
출입문 역시 닫아두면 지진으로 이음새 등이 고장 나 대피하지 못하고 갇히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열어둬야 한다는 설명을 들었다.
소방관은 몇 년 전 경주와 포항을 강타했던 실제 지진 피해 사례를 들어 대응 방법을 몸에 익혀둘 것을 당부했다.
지진의 강도는 단계별로 강해져, 마지막에는 진도 7의 지진을 경험했다. 서 있기는커녕 앉아있기도 힘든 흔들림이었다.
나 혼자 몸도 가누기 힘든데 실제 상황에서 별가루를 챙길 수 있을까 생각하니 잠시 아찔한 생각이 들었다.
아빠의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별가루는 나름 진지한 표정으로 머리를 손으로 감싸지고 내 곁에서 지진이 멈추길 기다렸다. 그 모습이 귀여워 사진을 찍고 싶었으나 핸드폰을 꺼내 드는 건 불가능했다.
다음은 태풍 체험이 이어졌다.
국내에 가장 큰 피해를 준 2003년의 태풍 ‘매미’의 설명을 듣고 그에 필적하는 강풍을 체험했다. 이 또한 서서히 단계별로 풍속을 올려 마지막에는 실제 태풍의 위력에 버금가는 강풍이 우리를 덮쳤다.
아이들은 바람 소리가 너무 커 헤드셋을 착용했다. 별가루는 체험 후 “내가 날아갈 것 같았어, 아빠!”라며 뭔가 신난 목소리로 소감을 들려주었다. (지진 체험 때와는 사뭇 다른 반응이었다.)
끝으로 침수 차량에서 탈출하는 체험을 했다.
유치원 통학 차량이 물에 잠겼을 때 유리창을 깨고 탈출하는 상황을 가정했다. 버스에 마련된 비상용 망치를 사용해 창문의 구석 모서리 네 군데를 깨트리는 것이 관건이었다.
소방관의 시범을 보고 아이들은 곧잘 따라 했다.
미션을 클리어한 뒤 신속하게 침수 차량을 탈출했다. 이 또한 아이는 재밌어했다.
어린이 화재 출동
경남 안전체험관의 모든 체험 중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백미 ‘어린이 화재 출동’을 마지막 순서로 참여했다.
어린이 화재 출동의 경우 안전모를 필히 착용해야 하는데, 양 갈래로 머리를 묶은 아이들은 헬멧을 쓸 때 불편해서 소방관이 ‘포니테일’처럼 다시 묶어 달라고 요청했다.
아이들이 직접 소방관이 되어, 로보카 폴리의 ‘로이’를 타고 화재 현장으로 출동한다. 4층 규모의 건물에는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하고 아이들은 신속히 물대포를 발사한다.
물줄기가 제법 강해서 아이들이 꽤 손맛(?)을 느꼈을 것 같다.
2개 조를 나눠서 첫 번째 조가 화재 진압을 마치면 교대로 다음 조의 어린이들이 다시 한 번 발화된 불을 끈다.
무사히 화재 진압을 마친 아이들은 ‘앰버’를 타고 본부로 복귀한다.
당일 4개 안전 체험을 모두 참여한 아이들은 별도로 남아 체험 내용을 토대로 OX 골든 벨 퀴즈를 푼다. (아쉽게 별가루는 최종 3인에서 탈락해 골든벨을 울리지 못했다.)
골든 벨과 상관없이, 모든 체험을 수료한 아이들은 중앙의 안내 데스크에서 수료증과 소정의 선물(뱃지, 소방차와 구급차 나노 블록 등)을 받을 수 있다.
두 번 방문한 경남 안전체험관의 후기는 만족의 만족을 거듭 경험했다는 소회로 마무리 짓고 싶다. (세금을 쓴다면 경남 안전체험관처럼!)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경험임은 물론 엄마, 아빠에게도 도움이 되는 경남 안전체험관이었다.